경영경제이론/지정학

상호 관세에 대응하는 공급망 조정

주삼부칠 2025. 4. 9. 19:26

(Nikkei Asia, Apr/9/2025) From Apple to Samsung, Trump's tariffs force supply chains to adapt -- fast

 

 

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세계 최대 전자 브랜드들은 아시아의 공급업체들에게 미국으로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 등의 생산을 늘리고 더 많이 선적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할 때 예상됐던 관세를 피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무역에 '폭탄 bomb'을 던지면서 한층 더 가속화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교역 상대국에 대해 최대 50%에 달하는 ‘상호 보복 관세’를 발표한 것이다.

 

며칠 안에 다가온 가혹한 관세 인상에 대응해야 했던 애플, 델, 마이크로소프트, 레노버 등 주요 기업들은 특히 3,000달러 이상의 고가 컴퓨터를 중심으로 최대한 많은 프리미엄 기기를 항공편으로 미국에 보내 달라고 공급업체들을 압박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공급업체 임원은 "고객사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소비자 전자 제품을 생산하고, 가능한 한 많이 항공편으로 선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재고로 보유한 부품과 소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세가 시작되기 불과 일주일 전에는 선적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한 국제 항공 운송 업체의 관리자는 이를 두고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닛케이 아시아에 "모든 통관 절차가 반드시 미국 시간으로 4월 8일 자정 전에 완료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더 많은 물량을 항공편으로 보내 달라는 긴급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전개되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HP는 처음에는 공급업체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며 기존 선적 계획을 유지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장을 바꾸고, 며칠 안에 가능한 한 많은 기기를 선적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영향을 덜 받는 대체 시장을 탐색하며 이를 전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기술 공급업체 임원은 "과거 필리핀 대신 베트남을 선택했던 많은 고객들이 최근 며칠 사이에 우리에게 와서, 필리핀 시설에서 제품을 포장하고 선적하는 것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필리핀은 관세가 17%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HP는 현재 태국과 중국 공장보다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멕시코에 공급 능력을 추가해 달라고 공급업체들에 요청하고 있으며, 일부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델은 미국 정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베트남 당국에 미국 측과 협상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이 사안을 아는 두 사람이 전했다.

 

다른 기업들은 일정 부분 손실을 감수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일부 공급업체들에게 2025년 2분기와 3분기 스마트폰 부품 주문을 줄일 것이며,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닌텐도는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닌텐도는 금요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스위치 2 게임기의 미국 내 예약 판매 시작을 연기하며 관세와 시장 상황 변화가 미칠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대응은 대체로 단기적인 성격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과 관세는 장기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관세 위협에 대응해 중국 외부의 생산 거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미국 외 시장으로 판매처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더 많이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중국 레노버는, 미국의 관세가 지속될 경우 자국 시장과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국가들, 그리고 유럽 시장에 더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이 사안에 정통한 임원이 밝혔다. Canalys 데이터에 따르면, 레노버는 미국 PC 시장 점유율 약 17%로 HP, 델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6위 컴퓨터 제조업체인 에이서는 마찬가지로 공급업체들에게 신흥 시장과 아시아 태평양, 유럽 시장을 우선시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한편, 세계 5위 업체인 에이수스(Asustek Computer)는 수년 동안 베트남과 태국으로 일부 생산을 이전해 온 만큼 제조 전략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공급업체들에게 전달했다고 닛케이 아시아가 전했다.

 

이번 주와 지난주 닛케이 아시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에이수스는 이미 미국 내 충분한 재고를 확보한 상태라며 공급업체들에게 미국향 선적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수스는 선적 중단 여부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지만, "관세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선제적으로 전략적 비축을 해왔다"고 밝혔다.

 

에이서는 "시장 수요, 경쟁 상황,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려해 고객 및 공급망과 긴밀히 협력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델은 "지난주 발표된 관세의 영향을 검토하고 평가 중"이라고 설명했다.

 

레노버, HP, 델, 에이수스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업체 임원은 "아직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해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기 매우 어렵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24시간, 48시간, 72시간 안에 다시 검토하고 조정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월요일 중국이 보복 관세 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로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 임원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여러 고객사들이 올해 아시아 태평양, 중동, 유럽 등 미국 이외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우리에게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업체 임원은 전 세계 소비자 전자제품 시장의 약 75~80%가 미국 외 시장이며, 기업들이 이러한 시장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애플 같은 미국 기업조차도 미국이 시장의 100%는 아니다. 기술 공급망은 수년간 인도, 동남아시아, 멕시코 등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고,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 네트워크들은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캔자스대 정치학과 잭 장(Jack Zhang) 조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미중 무역 전쟁이 이제는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확산되었지만, 그렇다고 동남아시아나 인도에 구축된 기술 공급망이 곧바로 멈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런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는 실제 가동되기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속도를 늦추거나 약간 가속할 수는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방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전자산업협회 IPC의 존 미첼(John Mitchell) 회장 겸 CEO는 "새로 발표된 관세와 무역 전쟁 격화 위험이 전자 산업 전반에 엄청난 불확실성을 불어넣고 있다"며 "기업들은 관세의 영향과 일부 국가들에서 관세를 철회할 양자 간 합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동남아시아에서는 신규 투자나 신규 채용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이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산업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특히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수요 위축일 수 있으며, 이는 거의 모든 기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델, HP, 애플을 포함한 많은 미국 전자업체들은 자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관세가 이러한 기업들과 그들의 공급업체들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주요 소비자 전자제품의 소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다시 전체 시장 전망을 짓누르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번스타인 리서치(Bernstein Research)의 추정에 따르면 애플은 북미에서 전체 매출의 약 40%를 올리고 있지만, 주력 제품인 아이폰 생산의 80% 이상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로의 아이폰 생산 이전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 소비자 수요를 충족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애널리스트인 알렉스 웡은 보고서에서 "상호 보복 관세는 모든 주요 기술 하드웨어 생산 거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기술 애널리스트인 아이반 램 역시 가격 인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및 지역 간 협상은 계속되겠지만, 수입업자와 공급업체들은 주문 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스마트폰과 PC를 포함한 소비자 전자제품들은 관세 인상을 상쇄하기 위해 소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카날리스(Canalys)의 애널리스트 키어런 제솝은, 대기업일수록 관세 영향을 물량 기준으로 더 크게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시장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외 브랜드들은 미국 외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며 "델, HP, 애플 같은 미국 대형 브랜드들은 행정부와 협력하며 일부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있지만, 이런 혜택은 소규모 기업들에게는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카날리스는 올해 미국 PC 출하량에 대한 기존의 소폭 성장 전망치인 2%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비록 소비자 가격이 약 20~25%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많은 생산 거점들에 적용되는 전체 관세율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키어런 제솝은 "대규모 생산 이전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시장과 자원 배분 관점에서 일부 기업들은 올해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개월 또는 수 분기 내 손익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글로벌 무역의 미래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HP, 델,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미중 간 무역 및 기술 전쟁이 격화되는 동안 우리는 세계를 '중국 대 비(非) 중국'이라는 구도로 바라봤다. 하지만 트럼프의 상호 보복 관세 이후로는 '미국 대 나머지 세계'라는 시각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가 이렇게 양분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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