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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사과’는 만들어진 신화

주삼부칠 2024. 9. 2. 00:24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나 과학자의 유명한 일화들 중에는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는 매우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즉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귀 아프도록 듣고서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의 상당수가 ‘후세에 만들어진 신화’인 셈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과 뉴턴의 사과나무 등이다.

 

피사의 사탑. ⓒ Sergey Ashmarin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 지나쳐서 생긴 이야기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지동설 주장, 진자의 원리 발견, 목성의 위성 발견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사실을 밝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는 기존 이론을 뒤엎고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운 일이다.

사람들은 갈릴레이가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많은 대학교수와 학생들을 모아놓고 실제로 두 공을 낙하시키는 실험을 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살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니, 물체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갈릴레이가 그곳에서 낙하실험을 했다는 증거는 없고 그 당시의 기록 어디에도 피사의 사탑 실험은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물론 갈릴레이 자신의 저서에도 그런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사학자들은 피사의 사탑 실험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임이 확실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만약 무거운 물체가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떨어뜨리는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그보다 늦게 떨어지려 할 것이므로, 그 결과는 처음의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서 더욱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갈릴레이는 이처럼 실험에 앞서서 논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중세의 역학이론을 지배해 온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이론이 명백한 잘못임을 밝혔던 것이다.

피사의 사탑 실험 이야기는 갈릴레이를 열렬히 흠모했고 만년의 그의 애제자였던 비비아니(Vincenzio Viviani, 1622-1703)가 쓴 갈릴레이 전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제자가 스승의 업적을 보다 극적으로 미화하기 위하여 그럴 듯하게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갈릴레이가 그 당시에 정말로 피사의 사탑에서 크기가 비슷한 나무공과 납공 등 밀도 차이가 크게 나는 두 물체를 낙하시켜서 실험했다면, 공기의 저항 등으로 인하여 무거운 납공 쪽이 먼저 떨어졌을 것이고, 갈릴레이는 망신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 기록은 없어도, 실제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해봤더니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지더라고 갈릴레이에게 편지를 쓴 사람의 기록은 있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 ⓒ Free Photo

 

후대의 계몽사조가 부풀린 신화 – 뉴턴의 사과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을 피해서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중, 정원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뉴턴의 사과는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만큼이나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사과로 꼽힐 듯하다. 그러나 이 일화 역시 진실여부를 놓고 과학사가들 간에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다만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는 갈렐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과는 달리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고, 뉴턴 스스로도 언급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뉴턴과 친분이 있었던 동시대의 영국 과학자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1687-1765)가 쓴 뉴턴에 관한 회고록이 최근에 공개되었는데, 뉴턴과 스터클리가 나눈 대화에서 사과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뉴턴이 중력, 즉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 정도로 사과를 언급했을 정도이지, 뉴턴이 땅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서 문득 만유인력과 역학법칙의 진실을 모두 깨달은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왜곡하여 부풀린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 계몽사상가 볼테르. ⓒ Free Photo

 

뉴턴 이전에도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지구의 인력 때문으로 생각해 온 과학자들은 없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모두 지상의 운동과 천상의 운동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았던 반면에, 뉴턴에 의해서 하늘이건 땅이건 모두 동일한 만유인력과 운동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패러다임이 확립된 것이다. 뉴턴의 업적은 오랜 세월동안 기나긴 연구를 통하여 확립된 것이지, 떨어지는 사과에서 영감을 얻어서 단박에 나올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니다.

이러한 신화는 뉴턴의 말년부터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를 널리 퍼뜨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Francois-Marie Arouet Voltaire; 1694-1778)이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천재는 뛰어난 영감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므로, 뉴턴의 업적을 근면하고 성실한 노력의 산물로 생각하기 보다는, 번뜩이는 영감과 직관을 강조하는 것이 계몽사조에 훨씬 부합되었을 것이다.

사실 여부야 어쨌든 사람들은 뉴턴의 사과나무에 열광하게 되어, 뉴턴의 모교인 캠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에 있던 사과나무가 ‘뉴턴의 사과나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분양되었고, 국내의 한 연구기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진실일까?

 

후대의 계몽사조가 낳은 또 다른 신화에는, 갈릴레이가 지동설 주장으로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포함된다. 그러나 수많은 대중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갈릴레이의 학자적 양심과 불굴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을 이 이야기 또한 진실이 아니다. 갈릴레이가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았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나, 가톨릭교회 역시 갈릴레이의 위치와 영향력, 이후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여 그다지 엄하게 처벌하지 못하고 가택연금 정도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판결을 내렸다. 갈릴레이 또한 가톨릭교회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 큰 형벌은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재판을 받을 당시 70살의 고령에 병으로 쇠약해진 갈릴레이에게서, 죽음을 무릅쓰고 가톨릭교회에 대항하는 용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저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법정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린 것은 갈릴레이가 아니라 이 세계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이. ⓒ Free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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