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Times, May/2/2008) At Kodak, Some Old Things Are New Again
1970년대 이스트먼 코닥에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전기 엔지니어 스티븐 J. 새슨은 당시 경영진이 그의 업적에 보인 당혹스러운 반응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새슨은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만든 프로토타입은 토스터만한 크기였어요. 기술 담당자들은 정말 좋아했죠. 하지만 필름 없는 사진 기술이다 보니 경영진 반응은 '귀엽네, 근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That’s cute but don’t tell anyone about it.'였습니다."
그 후로 한때 스스로를 '화학계의 벨 연구소'라 자부하던 코닥도 결국 디지털 시대를 받아들이고 이를 이해하는 연구원들을 영입하게 되었다.
코닥에서 20년간 근무하다 현재 로체스터 공과대학 강사로 있는 존 D. 워드는 "연구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했다. 새슨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는 디지털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물리학자, 전기 공학자, 그리고 분자보다 이진 코드에 더 익숙한 각종 전문가들이 코닥의 연구소로 모여들고 있다. "입사 당시 내 급여가 필름 판매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죠," 1983년 코닥에 입사한 전기 공학자 마지드 라바니 박사는 말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다른 이들의 급여를 만들어낼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코닥이 번창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디지털 제품은 필름 판매 감소로 인한 이익 공백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직원 수는 20년 전의 5분의 1 수준이며,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주가도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마침내 연구소에서 디지털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코닥은 최근 일본에서 약 285달러에 판매되는 포켓 크기의 TV를 선보인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소유주들이 각 상영관의 상영 현황을 추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있다. 휴대폰에 들어갈 만큼 작지만 저조도에서도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초소형 센서도 개발한다.
이제 코닥은 오래된 영화의 스크래치를 제거하고 화질을 개선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카메라, 휴대폰, TV 디스플레이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도 찾아낸다.
이번 달 코닥은 고속으로 청구서 내용물 같은 맞춤형 항목을 인쇄할 수 있는 연속 잉크젯 프린터 '스트림'을 출시할 예정이다. 3D 영화를 촬영하고 상영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물론 코닥은 소비자들이 코닥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코닥 온라인 사이트에 저장하고, 코닥 디지털 액자로 전시하며, 코닥 잉크와 용지를 사용하는 코닥 프린터로 인쇄하도록 계속 유도하고 있다.
"코닥은 이미징 분야의 World Bank가 되고자 합니다. 이미지와 관련해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해 코닥 브랜드의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거죠," 최근 코닥의 투자 등급을 '매도'에서 '보유'로 상향 조정한 시티그룹 투자연구소의 분석가 매튜 트로이가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새로운 제품들이 코닥이 수년 년 전에 시작했다가 포기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트림의 전신 기술 Precursor technology to Stream은 단일 노즐을 통해 잉크를 밀어냈다. 스트림은 수천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으며, 공기 편향 air deflec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잉크 방울을 분리하고 페이지에 잉크가 뿌려지는 속도와 순서를 제어한다.
"2003년에 연구소를 돌아다니다가 스트림이 될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을 본 기억이 납니다," 코닥의 사장 필립 J. 파라치가 말한다. "당시 기술은 완성도가 낮았지만, 진정한 돌파구 breakthrough였죠."
최고 기술 책임자인 빌 로이드는 다른 디지털 기술들도 마찬가지로 침체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5년 동안 여기 있었지만, 코닥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아직도 배우고 있어요," 그가 말한다. "코닥은 필름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항체 antibodies를 만들어낸 것 같았습니다."
많은 분석가들이 말하는 '죽을 뻔한 경험 near-death experience'이 이를 바꾸게 된다.
20세기 필름 거인이었던 코닥은 21세기에 들어서며 디지털 쓰나미에 휩쓸릴 위기에 처한다. 소니 같은 전자회사들이 사진 시장을 빼앗아 가고 있었고, HP나 제록스 같은 거대 기업들이 프린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는 전복 직전까지 갔던 초대형 유조선과 같았죠," 오래 전 코닥 주식을 매각한 솔라리스 자산운용의 최고 투자 책임자 티모시 M. 그리스키가 말한다.
하지만 2003년, 코닥은 HP에서 안토니오 페레즈를 영입한다. 현재 최고경영자인 페레즈는 로이드와 파라치를 포함한 HP 출신 인사들을 경영진 전반에 배치한다.
이들은 함께 코닥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주력 사업이었던 의료 영상 분야에서 철수하고 잉크젯 프린팅 시장에 재진출한다. 또한 특허 문서를 뒤져 지적 재산권을 발굴하는데, 이는 연간 2억 5천만 달러가 훌쩍 넘는 라이선스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최근 예로, 코닥은 제조업체와 소매업체가 위조품을 스캔할 수 있게 해주는 화학적 서명을 소재에 삽입하는 방법의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적 재산권과 관련해서, 그들은 마침내 대학이 아닌 영리 기업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코닥 주식을 매입 중인 버크만, 버크만 & 리드의 중개인 율리시스 A. 야나스가 말한다.
HP 출신 임원들은 비싼 소비자용 프린터에 저렴한 잉크를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이는 값싼 하드웨어를 판매하고 높은 마진의 잉크와 토너로 돈을 벌겠다는 업계의 오랜 관행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다. "우리는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시장에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 요소인 잉크 비용을 공략했습니다," 잉크젯 시스템 부문의 관리자 스티븐 A. 빌로우가 말한다.
그리고 아마도 로체스터에서 '위대한 노란 아버지'로 알려진 회사에게 가장 충격적이었을 변화로, 그들은 일자리를 줄인다. 20년 전 145,300명을 고용했던 코닥은 2007년 말 26,900명의 직원으로 마무리한다.
작년 코닥의 103억 달러 매출 중 64억 달러가 디지털 제품에서 나왔지만, 이로부터 얻은 이익은 단 1억 7,9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목요일, 코닥은 20.9억 달러의 매출에 1억 1,400만 달러의 1분기 손실을 발표한다. 이는 20.8억 달러의 매출에 1억 7,5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던 2007년 1분기에 비해 개선된 수치다. 코닥의 디지털 제품 매출은 10% 증가해 13억 6,600만 달러를 기록한다.
페레즈 CEO는 분석가들에게 2008년이 코닥에게 좋은 해가 될 것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투자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목요일 코닥의 주가는 67센트 하락한 17.22달러를 기록한다. 1997년 2월 94.25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주가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분석가들은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코닥 연구소에서 나오는 것들은 인상적이지만, HP나 제록스에 비해 우위를 점하지는 못합니다," 코닥에 대해 '매도' 등급을 부여한 크로스 리서치의 분석가 섀넌 S. 크로스가 말한다. 그녀는 코닥의 소비자용 프린터에 대해서도 감명받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총소유비용이 아닌 하드웨어 비용으로 구매를 결정합니다," 그녀가 말한다.
코닥의 주요 필름 경쟁사였던 일본의 후지필름도 여전히 경쟁 구도에 있다. 최근 후지필름은 화학 및 전자 연구소를 서로 인접한 곳으로 이전한다. "같은 장소에서 단일 팀으로 일하면 R&D 생산성이 크게 향상됩니다," 후지필름의 연구 책임자인 신페이 이케노우에가 이메일을 통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가들은 더 이상 코닥의 몰락을 예측하지 않는다. "코닥은 여전히 가장 많은 색채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크로스가 말한다.
하지만 그 수는 크게 줄었다. 연구 인력은 절반으로 줄어 약 1,000명 수준이다. "우리는 많은 화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18년 전 코닥에 입사한 유기화학자 마가렛 J. 헬버 박사가 말한다. "남은 우리들은 몇 년 동안 변화된 코닥에서 우리가 여전히 중요한 존재일지 모른 채 묵묵히 일했죠."
그들은 여전히 일하고 있지만, 그 업무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한 가지 예로, 과거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던 연구원들이 이제는 협력이 요구된다.
"이곳은 과거에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 일부 연구원들은 자신의 기록을 금고에 보관했죠," 31년간 코닥에서 근무한 분석과학 책임자 존 D. 발로가 박사가 말한다. "비밀주의가 사라졌을 때 일부 연구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연구원들은 사업 관리자들과도 협력해야 한다. 1998년 코닥에 입사한 컴퓨터 과학자 아밋 싱할은 2주마다 사업 부서와 회의를 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그들을 전혀 만나지 않았죠," 그가 말한다.
사실, 최근까지 재무, 마케팅, 연구 등의 기능은 각자의 위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CEO에게 보고하는 구조였다. 오늘날은 잉크젯 프린터의 제작, 판매, 서비스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한 그룹으로 묶여 있으며, 카메라, 센서 또는 다른 제품을 다루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우리는 연구의 상업화를 촉진하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파라치가 말한다.
연구 책임자들은 분기별로 회의를 열어 제품 경계를 넘나드는 기술을 발굴한다. 마케팅, 운영, 고객 서비스 책임자들도 정기적으로 만나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판매할 수 있을지, 또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연구원들과 마케팅 담당자들이 기능적 동료들보다 서로 더 많이 교류한다.
"연구원들은 무언가를 발명하고, 그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며, 상용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외부 제휴 담당 부사장인 줄리 게르스텐베르거가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것이 사업 부문과의 협력 하에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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