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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를 영원히 바꾼 몇가지 사건들

주삼부칠 2025. 12. 1. 00:47

(월간조선, 2004-5-7)

 

살인자가 된 수석 디자이너

 

1990년 어느 날, 독일의 한 도시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부자간 살인이라는 다소 의외의 범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다음날 독일 일간지들의 보도들과 함께 관련사와 전세계 자동차 디자인 업계를 뒤흔들었다. BMW 수석 디자이너인 클라우스 루테(Claus Luthe),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

 

1990, 클라우스 루테는 BMW 역사상 4번째 수석디자이너로써 회사와 업계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탄탄하고 야무진 형태의 1986년형 7씨리즈, ‘90년형 3씨리즈와 88’년형 및 ‘95년도의 5씨리즈들이 그의 지휘하에 만들어졌으며, 이 자동차들은 BMW의 팬들과 자동차 전문 언론에게서 BMW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궤도로 옮려준 뛰어난 수작들로 평가받았다. 거기다가 루테는 BMW로 옮기기 전에 아우디의 전신인 NSU에서 1980년대에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유선형 디자인 경향을 불러일으킨, 독창적인 Ro80을 디자인함으로써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이미 입증한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두운 가족사가 있었으니, 마약중독자인 아들과의 불화가 바로 그것이였다. 그 불화는 계속해서 격화되다가 1990년 그 운명의 날, 난폭하게 집으로 난입한 아들과 아버지간의 대치가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루테는 아들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게 구속되었다. 정당방위였을까, 아니면 BMW의 도움이 있었던 걸까. 재판후 감옥에서 복역하였으나 사건을 둘러싼 상황이 매우 비극적이었기에 옥중생활은 그리 길게 하지 않고 출감하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단순하게 개인적인 사건으로 끝날수 있었던 이 사건은 훗날 BMW의 얼굴을 완전히 바꾸는 시작점으로 기록된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에 비유될 수 있는...

 

크리스 뱅글의 등장

 

사건발생 당시 BMW의 디자인을 포함한 R&D(연구개발) 부문의 총책임자는 볼프강 라이츨레(Wolfgang Reitzle) 박사였다. 살인사건으로 공석이 되어버린 수석 디자이너 직은 루테가 성공적으로 지휘한 작품들만큼이나마 대체하기 힘들었으며, 그와 같은 자질의 후보를 찾는 것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라이츨레 박사가 새로운 후보 물색에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근2년간 BMW의 수석 디자이너 직이 공석이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마침내 1992 10, BMW 2년간 공석이였던 수석 디자이너 직책에 미국인인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을 선정한다.

 

명문 디자인 학교로 자동차 디자인에 관해서는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ACCD)출신으로 여러 회사들에서 근무하였고 BMW로 가기 전에는 이태리의 피아트 센트로 스타일레(Fiat Centro Stile)의 디렉터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뱅글의 디자인 철학은 라이츨레 박사의 경영 스타일과 많이 틀렸기에 이들간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일단 볼프강 라이츨레는 독일 뮌헨공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경영공학까지 공부했다. 동시에 그는 엘리트주의자로 최고급 옷에 최고급 차에 날씬한 미녀를 동반한 최고급 인생을 즐기는 반면 냉철한 경영인으로 휘하의 부하들에게는 철두철미한 일종의 철권주의자였다. 반면에 미대 출신의 크리스 뱅글은 2001 1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실린 “The Ultimate Creativity Machine: How BMW turns Art into Profit.”에서도 썼듯이 디자인실의 독립성 유지를 자신의 최고 목표로 여기고 있었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그였지만 1992년 당시 BMW로 스카웃될 당시 라이츨레 박사는 연구개발 총책임자라는 직위와 함께 회사내 경력으로도 까마득한 상급자였고, 뱅글은 라이츨레 박사 아래에서 기존의 BMW 디자인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디자인들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허나 뱅글이 BMW으로 온지 7년만인 1999,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운명이 수석 디자이너인 루테를 덥쳤듯 당시 사장이 되어 있던 라이츨레 또한 덥치게 되었다.

 

라이츨레 그리고 피체스리더...

 

1994, 당시 46세의 BMW의 베른트 피체스리더 회장은 영국의 Rover그룹 매입을 결정한다. 당시 로버그룹은 로버(Rover), 랜드로버(Land Rover)등을 생산하고 있었고 더불어 미니(Mini), 오스틴 힐리(Austin Healey)와 같이 당시 생산되지 않는 클래식한 브랜드명의 권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BMW와 로버를 통합한 BMW 그룹의 총생산대수는 100만대를 넘어섰고, 피체스리더 회장은 미니와 랜드로버, 오스틴 힐리등 많은 클래식한 브랜드들을 보유한 로버를 잘 활용하면 BMW그룹이 대형화되어 가는 경쟁사들 사이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체스리더 회장은 1993년 약관 45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오른 뛰어난 경영인으로, 라이츨레 박사처럼 독일에서 통상 임원들이 흔히 보유한박사학위 MBA도 없었다. 그는 라이츨레와 뮌헨공대(MTU) 동문으로 기계공학 학사학위를 받고 BMW에서 잠시 1년정도 일하다가 뮌헨의 뛰어난 광고회사를 설립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기만의 조그만 업체를 꾸릴려고 했지만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을 알아본 BMW가 계속해서 붙잡는 바람에 남아버린 특이한 인물이였다. 회장이 되기 전인 1992년 끊임없이 과한 임금인상등을 요구하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지쳐버린 나머지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BMW 사상 처음으로 첫 해외공장의 설립을 성공리에 주도했다-그때 그와 함께 미국 전역의 후보지를 같이 탐사한 참모가 현재 BMW 회장인 헬무트 팬케 회장이다. 특이한 것은 영국의 유명한 소형차인 미니를 만든 알렉 이그노시스(Sir Alec Ignossis)경이 자신의 삼촌이라는 것으로 '영국광'(Anglophile)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영국에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같다.

 

피체스리더 회장은 시간이 날때마다 회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상호간의 신뢰를 통한 경영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1999년 당시의 피체스리더 회장-라이츨레 사장이라는 BMW의 최고경영진 구성은 비스마르크의 모토처럼당근과 채찍과 같은 특이한 존재가 아니였나 한다. 더욱이 회장직이 확실했던 라이츨레 박사가 1990년대 초반에 포르쉐 사장직 수락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피체스리더가 라이츨레를 제치고 회장이 되었기에 적잖은 알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체스리더는 로버의 경영 정상화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건실한 BMW와는 달리 문제 투성이의 로버를 잘못 파악했는지 본사에서 경영진을 직접 파견해서 로버사의 문제를 파악, 장악하지 않고 자율적인 해결에 맡기는 바람에 로버는 인수후에도 점점 부실해져 갔다.

 

BMW 이사회의 내란

 

1999 2 5. BMW의 뮌헨 본사의 임원들은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영국의 자회사 로버의 방대한 적자가 발표나자 BMW의 주식 49%를 소유한 콴트(Quandt)가문이 담당자의 문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소집되었으며 피체스리더 회장과 라이츨레 사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5년전 로버의 매입을 추천했던 피체스리더 회장에게 경영부실이란 책임이 지워졌다. 이사회 의결권 절반을 보유한 직원들의 대표기구인 직원 평의회는 피체스리더에게 동정을 느꼈겠지만 나머지 절반을 보유한 임원들은 피체스리더의 문책을 불가피하게 보았다. 결국 피체스리더는 사의를 밝히고 이사회실을 나왔다. 이제 자동적으로 사장인 라이츨레 박사가 회장이 되는 듯 했다. 더욱이 라이츨레는 전부터 로버의 인수에 대해서 반대했었다. BMW회장출신의 이사회 의장인 에베하르트 폰 퀸하임(Eberhard von Kuenheim)을 비롯한 몇몇 임원들은 라이츨레 사장의 회장직 부여를 당연히 생각했고 라이츨레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투표결과는 뜻밖이였다. 직원 평의회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동안 BMW에서 철권통치를 휘두르던채찍과 같은 존재의 라이츨레가 회장이 될 경우 더 무자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또한 대주주인 콴트가문도 그동안 피체스리더 회장과 끝임없는 반목을 일으키며 독일 언론계에 부정적인 기사감을 제공해주던 라이츨레 사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콴트가문은 직원 평의회 대표에게 라이츨레의 회장직 승계에 대한 반대를 설득시켰으며, 원래부터 라이츨레에게 감정이 있었던 평의회는 콴트가문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로서 이사회의 표결권은 찬반이 반반으로 갈라져 있는 퀸하임의장의 투표권 하나가 회장 여부를 가르게 되었다. 퀸하임 의장은 전부터 라이츨레에게 회장직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졌다. 대주주인 콴트가문, 직원들의 대표기구, 거기다가 사퇴를 한 피체스리더 회장조차 라이츨레의 회장부임에 반대하고 있었다. 결국 퀸하임 의장조차 반대의견에 굴복, 라이츨레에게 회장직을 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라이츨레 또한 몇시간 전의 피체스리더처럼 또한 사의를 표하고 이사회실을 나갔다.

 

이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회장의 로버사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회장과 사장간의 알력, 대주주의 요구, 이런 소모적인 분쟁이 회사를 내란수준으로 몰고 갔다. 이러는 가운데 회장과 사장 모두다 불과 몇시간만에 공석이 되어버렸고, 예비후보란 없었다. 불과 몇 시간만의 일이였다.

관계자들은 곧바로 회사의 안정화를 위해 최고경영자 영입에 들어갔고 수십통의 전화가 메르체데스 벤츠의 전직 사장을 비롯해서 포르쉐의 위데킹 사장등에게 갔지만 아무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기나긴 몇시간동안 모든 묘책을 다쓴 이사회는 궁여지책에 당시 제조부문의 최고책임자인 요아킴 밀버그(Joachim Milberg)를 회장에 추대했다. 교수 출신의 밀버그 박사는 회장을 맡는 것을 주저했으나 회사가 처한 위급한 상황을 알고 있었고 아내와 통화후 회장직을 수락함으로써 BMW의 위기는 일단락되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BMW는 로버그룹중에서 브랜드명이 가장 높은 랜드로버(Land Rover)를 포드사에게 매각하고 소형차인 미니(Mini)브랜드는 계속해서 보유, 개발하기로 했으며, 대신 로버(Rover)사는 영국계 컨서시엄에게 단돈 1파운드 가량의 돈을 받고넘겨줬다'. 이렇게 하여 부실한 영국 자동차 그룹은 BMW 최고 경영인 두 명을 앗아가고 BMW에게 기나긴 후유증을 남긴채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훗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로버사에게 당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의 제목인‘The English Patient'('영국인 환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BMW의 급선회: 새로운 세상을 향해

 

새로운 경영진을 맞이한 BMW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기존의 소량 생산의 고급 브랜드에서 대량 생산의 다양한 차종판매를 꾀하게 되었다. , 로버의 인수 실패로 타 브랜드를 통한 사세확장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고 BMW브랜드를 통한 확장이 시작되었다. 원래의 3,5,7, 8씨리즈, 고성능 디비젼인 M씨리즈정도의 차종만 보유하던 고급브랜드에서 이제는 1씨리즈(2004년 출시), 2씨리즈(2005년 이후), 3씨리즈, 4씨리즈(2005년 이후), 5씨리즈, 6씨리즈(2004년 출시), 7씨리즈, Z4(2003년 변경), Z8, M디비젼(모든 씨리즈에 도입이 될듯), 그리고 SUV X3, X5까지 만들 정도로 차종의 폭을 대폭 넓혔다.

 

이렇듯 구 경영진이 물러나고 새로운 사세확장이란 시점에서 BMW에 다양해져 가는 차종을 구분할 수 있고 21세기에 경쟁사들의 격심한 도전에 차별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방향이 요구되었으며 바로 그 자리에는 마침내 라이츨레의 견제가 없어진 크리스 뱅글이 있었고, 2002년에 나온 BMW 7씨리즈는 세계적으로 극심한 디자인 찬반양론을 가져왔으나 그것은 BMW 디자인 변화로 상징되는 회사 경영변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리하여 한 수석 디자이너의 살인 관련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퇴진과 한 최고경영자의 무리한 욕심에 의한 경영난은 BMW를 완전히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던 이 9년간의 시차를 둔 이 사건들은 나비 효과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

 

2001 1월초. 눈발로 덮인 추운 디트로이트의 코보홀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 경영인들에게는 메카순례와 같은 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 (NAIAS), 즉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열리고 있었다. Press day라고 불리는, 세계 언론과 업계 관계자들만이 출입하는 날, 포드사의 고급 브랜드 총괄 부서인 PAG(Premium Automobile Group)의 총책임자 볼프강 라이츨레 박사는 BMW 전시장을 들렸다가 앞에 놓인 한 컨셉트카를 보고 놀랬다. 그것은 다름아닌 컨셉트인 X coupe였다.

 

옛날 루테가 디자인했던 직선적인 BMW의 모습은 완전히 가고 뱅글 지휘하에 만들어진,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듯 다면적인 디자인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라이츨레 박사는 더 이상 BMW 소속이 아니였으나 앞으로도 BMW출신으로 불리울 것이고 한때 그가 지도했던 회사였다. 또한 그는 뱅글의 새로운 디자인을 냉소적으로 보고 있었고, X coupe은 그런 그의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작품이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X coupe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내가 [BMW] 있었으면 계속해서 [뱅글에게] 재갈을 물리는 건데…’

 

얼마후 라이츨레는 포드내의 분규에 휘말려 사임을 하고 독일 엔지니어링 회사인 Linde AG 의 회장으로 옮겨간다. 비록 자동차 회사는 아니였지만, 그가 원하던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에게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피체스리더 회장처럼.

 

2002 4, 유럽 자동차 업계의 거인인 독일 폴크스바겐(Volkswagen AG, 이하 VW)은 자회사인 SEAT의 베른트 피체스리더 회장을 모회사의 피에히 회장에 이어 후임 회장으로 임명한다. 2년전인 2000, BMW를 떠나있던 그를 일찌감치 눈여겨 보던 포르쉐 가문출신의 피에히 회장에 의해 VW에 스카웃되어 온 전직 BMW회장은 이렇게 하여 자신이 평생 몸담아오던 회사의 정반대 진영 선두에 서게 되었다. BMW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아는 피체스리더가 국민차 브랜드로 유럽최강의 회사이자 고급차 브랜드에 막 신경을 쓰는 잠재적인 도전자인 VW그룹의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BMW는 취임을 축하해주면서 그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낸다.

 

2004년 초, 전세계의 BMW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크리스 뱅글은 롤스로이스와 미니를 포함한 BMW그룹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승진하고 일일업무에서 일단 손을 띄게 된다고 발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BMW 디자인 변화의 끝은 아니였다. 그동안 BMW의 급진적인 디자인 변신에 뱅글이 있었음은 확실하다.하지만 직접적으로 실무적인 차원에서 화제의 7씨리즈 외형 디자인과 최근의 6씨리즈 디자인을 담당했던 사람은 바로 미국에 있는 BMW의 자회사인 DesignworksUSA 사장이였던Adrian van Hooydonk으로 그는 이번에 뱅글의 승격과 함께 BMW 차량에 대한 디자인 총괄을 맡게 되었다. , BMW의 디자인 변신은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더 발전할 것이라는 반증이 아닐수 없다.

 

루테, 11년후...

 

루테에게 있어서 비극의 날이 있었던지 11년이 지난 2001 1 12.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는 '유러몰드'('Euromold')라는 디자인 및 제품개발과 관련된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고, 그곳 한 구석에서는 'Ro80클럽 독일'이라는 동호회의 한 멤버가 주최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회는 시대를 앞섰던 NSU Ro80차량의 디자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 전시회보다 특별했던 것은 전시장에 놓여있던 푸르른 Ro80 한대보다는 이젠 백발의 노인이 되어버린 Ro80담당 NSU디자이너, 클라우스 루테 때문이였다.

 

참석자 한 명이 그날 전시회에 참석한 루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에 무뚝뚝해 보이던 그는 Ro80 전시차의 운전석에 앉아 핸들밑에 손을 내려놓고 무엇인가 회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차량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에게는 수십년전 NSU에서 즐거웠던 그때를 회상하듯 어느새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십수년전 NSU 그리고 BMW에서 그가 디자이너였을때 수백장의 종이위의 고심한 흔적들이 기나긴 프로세스끝에 자동차라는 매체로 세상에 처음 보여질 때 희열들을 기억하듯, 루테의 미소는 전시장 불빛들 아래에서 유난히 빛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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