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okings, Jan/7/2016) The dollar’s international role: An “exorbitant privilege”?

이 글은 내가 진행한 먼델-플레밍 Mundell-Fleming 강연을 바탕으로 한 세 번째 글이다. 앞선 두 글에서는 최근 미국 통화정책에 제기된 두 가지 비판을 다루었다. 첫째는, 미국이 달러 가치를 절하해 무역에서 경쟁 우위를 얻으려는 이른바 '통화 전쟁'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미국 통화정책의 변화가 특히 신흥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금융안정성에 파급 효과를 미쳤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논쟁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도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쳤음에도 왜 유독 연준이 이러한 비판의 중심이 되는가? 흔히 제시되는 답변은,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미국 달러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화 자산으로 보유되고 있다. 따라서 연준의 정책이 특히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국제적인 파급 효과를 고려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인가? 달러의 국제적 지위가 미국에 부당한 이익을 안겨주고, 다른 나라에는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인가? 달러의 역할이 연준 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확대하는가? 그렇다면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다룰 것이다. 나는 미국이 달러의 지위에서 얻는 혜택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상당히 줄어들었으며, 연준의 국제적 영향력이 나타나는 주요 경로는 '달러화된 신용시장'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달러의 국제적 역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해 왔다. 전후 초기 시기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1944년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서 체결한 협정에 따라, 다른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되었고 달러는 (느슨하게) 금에 연동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다른 국제 통화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참고할 수 있다.)
이 체제의 목표는 대공황 시기에 붕괴된 금본위제를 보다 유연한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시스템이 미국에 가장 큰 유연성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미국은 국내 정책 목표를 추구할 상당한 자유를 누렸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능력도 가졌다.
프랑스 재무장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이를 두고 미국이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가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결국 부분적으로 미국이 '기축 anchor' 국가로서 물가 안정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붕괴했다.
1970년대 초 이후 국제 통화 시스템은 사실상 분산형 체제로 전환되어, 각국이 자체적으로 환율 체계를 설정하고 주요 통화들의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방식(고정환율이 아닌 '변동환율')으로 운영되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중앙은행들과 정책 당국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반면, 현재의 분산형 체제 decentralized regime에서는 공식 외환보유고를 제외한 무역과 금융에서 어떤 통화를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이 대부분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달러가 여전히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관성 inertia'이다.
국제 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고, 다른 사람들도 달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달러의 유용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네트워크 외부성 network externalit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달러는 국제적 교환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달러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주요 이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가치의 안정성 Stability of value. 1980년대 중반 이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해 왔다.
2. 유동성 Liquidity. 미국 금융시장, 특히 미국 국채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깊고 유동성이 풍부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네트워크 외부성' 덕분인데, 사람들이 국채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시장에서 거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 시장은 규모가 크고 상품이 동질적인 반면, 유로화로 거래되는 국채 시장은 발행국마다 나뉘어 있어 분산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미국 국채 시장의 유동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3. 안전성 Safety. 미국의 부채 한도를 둘러싼 의회 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를 비롯한 달러 표시 자산은 매우 안전하다고 간주되며 그 공급량도 많다. 더 일반적으로 볼 때, 달러는 '안전자산 safe haven' 통화로, 시장이 불안정할 때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평상시에도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4. 최종 대부자 기능 Lender of last resort. 금융위기 동안 연준은 14개 중앙은행(그중 4곳은 신흥국 중앙은행 포함)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여 달러 공급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다. 이 스와프 협정을 통해 해외 중앙은행들은 달러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자국 은행들에 대출하여 달러 거래가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반대편에서는,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미국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일부 이익은 상징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미국 시장과 제도, 정책이 일종의 '우수 품질 보증 마크'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사실 국제 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것의 이점은 대부분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노력 역시 상당 부분 국제적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세계 주요 기축 통화를 발행하면서 얻는 실질적인 이익, 즉 '과도한 특권'은, 유로화와 엔화 같은 다른 통화들의 실제 또는 잠재적 경쟁이 심화되고 미국의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상당히 약화되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이 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해 지급하는 금리는 대체로 다른 신용도 높은 산업 국가들이 지급하는 금리보다 낮지 않으며, 현재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점은 그림 1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림 1은 인플레이션 연동 국채를 기준으로 계산한 다섯 개 국가의 정부 부채에 적용되는 실질 금리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점은 무엇일까? 미국 달러화 지폐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보유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무이자 대출을 받는 것과 같다. 다만, 이러한 이자 비용 절감 효과는 연간 약 2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 GDP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불리는 이러한 수익은 설령 달러가 국제 거래에서 다른 통화에 비해 입지가 약화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정 부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기업들이 국제 거래에서 환율 위험을 조금 덜 부담하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통화와 변동환율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화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달러의 '안전자산' 역할은 미국 기업들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세계 경제 상황이 가장 어려울 때 달러가 강세를 보이게 되고, 이는 미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국제 비즈니스와 정치에서 영어가 공용어라는 사실이 달러의 국제적 역할보다 미국에 훨씬 더 큰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과도한 특권'은 이제 더 이상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달러의 특별한 역할이 연준의 통화정책이 해외로 전파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달리 말하면,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같은 다른 중앙은행이 유사한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것과 비교할 때, 연준의 정책이 국제적으로 미치는 차별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차별적 경로는 신흥국의 많은 차입자들 — 은행과 기업들 모두 — 이 미국 이외의 대출기관과 거래할 때조차 달러 표시로 대규모 차입을 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러로 차입함으로써 신흥국의 은행과 기업들은 더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글로벌 신용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며, 대출자 입장에서도 현지 통화 환율 변동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부채가 달러화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준의 정책이 국제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크게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국제 차입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준이 '세계의 중앙은행'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신흥국 기업이 수익과 비용의 대부분을 자국 통화로 처리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이 일상적으로 달러화 신용시장에 의존해 차입하더라도, 투자나 고용과 같은 의사결정에 있어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자국 통화 기준의 차입 비용이지 달러 금리가 아니다. 따라서 연준이 달러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실질적인 차입 비용이 반드시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떨어지더라도 그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
이는 해당 기업이 향후 환율, 즉 달러와 자국 통화 간 환율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달러가 향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면, '더 저렴해진' 달러 차입이 신흥국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로 저렴하지 않을 수 있다. 빚을 갚을 때 자국 통화로 환산한 상환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연준이 완화적 정책(즉, 달러 금리 인하)을 펴더라도, 전 세계 차입자들이 더 쉬운 차입 여건을 자동으로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실질적인 차입 비용은 차입자의 환율 기대뿐만 아니라 해외 중앙은행들의 정책 대응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연준의 정책이 신흥국 차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예상 차입 비용보다는 실현된 차입 비용, 즉 기존 대출의 상환 비용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 차입자들이 받은 달러 대출의 상당수(아마 대부분)는 환율 변동 위험에 대해 헤지되어 있지 않다. 가령 연준이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달러 가치가 예상치 못하게 급등하게 되면, 처음에는 저렴해 보였던 달러 대출이 이후에는 매우 비싸지게 된다. 빚을 갚을 때 '비싸진' 달러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실질적인 부채 부담이 커지면 신흥국 차입자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대출, 투자, 고용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연준의 긴축 정책은 해외 경제에서도 긴축으로 체감될 수 있다. 물론, 해외 차입이 달러화로 덜 이루어지거나 달러 차입이 환위험에 대해 더 잘 헤지되어 있다면 이러한 효과는 덜했을 것이다.
이제 연준이 금리 인상 사이클에 들어서면서, 달러 강세가 신흥국 차입자들에게 시사하는 위험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긍정적인 소식은, 지난 18개월 동안 달러가 상당히 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주요 금융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신흥국 은행들과 기업들이 재무적 압박을 받게 되면, 이는 신흥국 경제를 둔화시키고 해당 국가들에 대한 투자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헤지되지 않은 달러화 차입이 금융안정성에 초래하는 위험은, 신흥국 정부들이 향후 달러화 신용시장 접근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제한할 근거가 된다. 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관리할 수 있는 곳은 은행 시스템이다. 규제 당국은 대출기관들이 달러 강세에 따른 위험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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