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Jan/15/2024) “인생 8할은 운…능력주의 함정 벗어나야”
한때 나도 능력주의의 신봉자로 전력 질주했지만, 살아보고 8할이 운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데이터가 말해준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평생 소득의 50% 이상이 결정된다. 부모가 물려준 DNA가 30%, 자라난 환경이 10% 비율로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 입양아와 친자의 소득 추적 통계로 밝혀진 사실이다.
나머지가 살면서 만나는 행운과 불운, 은인과 악연이 크로스되는 거다. 운 좋게 대학에 간 것, 사소한 기적들⋯, 따지고 보면 노력과 집중할 힘조차 유전과 양육 환경에서 나온다. 순수한 내 능력과 노력은 제로에 가깝다.”
능력보다 운에 좌우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왜 중요한가.
“능력주의의 함정이 ‘네가 게으른 탓’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내 성취가 내 능력보다 운에서 왔다는 걸 알면 겸손해진다. 처지가 곤란한 사람을 향해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하기에 앞서 ‘나보다 운이 없었구나’라고 인정하게 된다. ‘나는 운이 좋고 너는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인정해야 약자를 보듬는 품이 생긴다. 우리는 지금 ‘고부담 고복지’ 국가로 가야 할 전환점에 있다.
명문대생의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 장기적인 복지 국가로 가는 데 도움 될 거라고 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나온 제비뽑기 대학 입시를 예로 들면서 말이다. 대학 입시를 제비로 뽑는단 말인가.
“제비가 운이다. 인생 8할이 운이다. 몇억원이 걸린 아파트도 ‘로또 청약’이라며 제비로 뽑지 않나.
자연이 만든 제비뽑기는 놀랍지 않은데, 대학 입시라고 못 할 게 있을까. 내가 교환 학생으로 머물렀던 스웨덴, 네덜란드는 상위 5% 중에서 의과대학 입시를 제비로 뽑는다. 문제 한 개 더 맞고 틀리는 걸로 줄 세우지 않는다. 시험도 모르면 찍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커트라인 정해서 한 개 틀리면 합격하고 두 개 틀리면 불합격하면, 나쁜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명문대 지원자 중 합격자 대비 3배수는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비를 뽑는 게 더 건강한 해법일 수 있다. 한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니, 수능 끝나면 킬러 문항으로 시비가 붙는다.”
책을 보면 흥미로운 데이터가 많다. ‘사립고 출신 남성’에게 ‘명문대 임금 효과’가 몰려있었다는 통계나 성적도 비만도도 룸메이트의 영향을 받는다는 ‘친구 효과’도 인상적이었다.
“학력 과실을 따 먹는 것조차 불평등하다. 65세 이상 남성은 지금 특정 사립고 출신이 임원 승진과 고소득의 과실을 거의 따먹었다. 친구 효과는 유유상종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무작위로 배정된 룸메이트에 따라 학점과 체중까지 달라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배우자인데, 배우자에 따른 행운과 불운 연구는 현재로선 샘플 측정이 불가능하다(웃음).”
최근의 흐름을 보면 경제학이 정말 삶 가까이 들어온 느낌이다. 실증주의 경제학, 어디까지 왔나.
“지금 미국 경제학의 3분의 1이 응용미시경제학 분야다. 정부의 특정 정책을 사회 실험으로 엄밀히 평가한다. 최근 응용미시경제학자들이 세 번 노벨상을 타면서 주류가 됐다. 실증주의 경제학은 과거 사건을 철저히 분석, 인과를 계산해서 미래에 제언한다. 대표적인 게 헤크먼 곡선이다. 운 나쁜 사람을 돕는 수많은 정부 정책이 시행됐을 때, 흩뿌려진 나쁜 운이 어떻게 개선을 이뤄내는지, 20년간 추적한 곡선이다.
영유아기, 태아기, 임산부⋯, 정부가 일찍 개입할수록 지원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났다. 그 답은 과학이 갖고 있다. 인간의 신체, 뇌 기능이 말랑말랑할 때 생긴 나쁜 사건이 인생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례로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출산했을 때와 출산 후 돌아가셨을 때, 태어난 아이의 건강이 확연히 다르다. 돌아가신 후 낳은 아이는 태아기 내적 충격으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약을 먹을 확률이 25% 올라간다. 성인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10% 늘어난다.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유아기 부정적 경험과 그에 따른 고통의 파급 증거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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