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Interviews

이창호 인터뷰

주삼부칠 2025. 11. 30. 14:25

“아직 난 부족이상적 바둑 둬보는 게 꿈

 

신산(神算), 전대고수(前代高手)의 환생, 사람의 모습을 한 바둑의 신, 안개 덮인 태산(泰山)….

 

이제 갓 서른에 접어든 프로기사 이창호에게 따라붙는 최상급 수식어들이다. 그가 걸어온 바둑인생 역시 무협지에서 막 뛰쳐나온 듯 엄청나다. 16세에 스승 조훈현을 꺾어 국수위에 오르고 18세엔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해 세계 최연소 챔피언을 기록하며바둑의 황제가 되더니, 지금까지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세계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인 · 기성 · 최고위 등 국내외 기전 11개의 타이틀을 몽땅 휩쓸어버린 30세 청년, ‘이창호를 쓰러뜨리자란 젊은 기사들의 구호는 10년째 진행형이다.

 

“이창호가 말주변이 없어서 인터뷰를 꺼리거든. 아마 (인터뷰) 하기 힘들거야.”

 

주간조선 송년호를 내놓으며 이창호의 특별 인터뷰를 싣는다는 얘기에 바둑계 종사자들은 고개부터 저었다. 워낙 숫기가 없어 LG정유배 프로기전 시상식(12 13)에서도 떠밀리듯 어색하게 받아든 상패를 들고기쁘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남긴 그다. 뭘 물어도 질문을 오래 곱씹으며 한두 문자의 단문단답식 답을 내놓아 그는돌부처로 통한다.

 

그런 이창호를 만난 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2 15한국기원’ 4층 기사실(棋士室)에서였다. 문을 열고 휘휘 둘러봐도 바둑의 절대강자처럼 보이는 이는 없다. “…, 이창호씨 계십니까?” 큰 소리로 묻자 기사실 구석에서 사람 한 명이 스윽 일어선다. 머리칼 한쪽은 뻗치고 청록색 티셔츠와 면바지 위에 걸친 재킷은 덩치보다 훨씬 커보였다.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 세계에 파묻힌 전형적인 ‘천재 패션, 겉모습만으로는 바둑에 막 입문해 선배들의 대국을 힐끔거리는 10대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곧 열쇠꾸러미를 손에 들고 인터뷰 장소로 쓸 만한 빈 대국실을 찾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뛰고는 있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고 말이 아닌눈빛으로 취재진을 특별대국실로 안내했다.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은 1990 10 10일 그가 스승인 조훈현 9단을 이겨쌍십절의 반란이라 불리는 바둑계의 천재지변이 일어난 곳이다.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이런 순둥이한테 날고 긴다는 세계의 바둑 고수들이 무릎을 꿇었나싶게 이창호의 두 눈은 맑고 차분했다.

 

김민배=이창호 프로는 언제, 어떤 계기로 바둑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이창호=초등학교 1학년 말에 시작했어요. 전주설기원에 가 배우게 된 건지, 그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오목을 가르쳐 주시다 배우게 된 건지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요. 설기원에서 바둑 놓던 분들이 저를 가르쳐 주시고 가끔 사범님한테도 배우고 그랬어요.

 

김민배=오늘의 이창호를 있게 한 사람이 바로 할아버님인 이화춘씨라고 들었습니다. 서울의 전영선 7단을 초빙해 일주일에 1~2회 지도를 부탁하고 아마추어 강자들인 전주의 이광필이정옥 사범에게 손자의 바둑강습을 부탁했다죠. 할아버님도 바둑을 잘 두셨습니까.

 

이창호=할아버지께선 많이 두시진 않았어요. 저와 기원에 가시면 주로 다른 분들과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김민배=8세에 바둑에 입문해 18세에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하며 세계 최연소 챔피언을 기록했습니다. 올해까지 22년간 바둑에 몸담아 온 셈인데, 이창호에게 바둑이란 대체 어떤 의미입니까.

 

이창호=(바둑은)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앞으로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을 두면서 살아가면서 부딪힐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배우는 듯해요.

 

김민배=바둑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웁니까.

 

이창호=기술적인 면에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법도 배우지만, 삶도 배웁니다. 상대와 부딪힐 때 타협을 하든가 어려운 상황에서 양보도 하는 그런 모든 과정이 일상생활과 거의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금 닥친 상황에서 좀 무리해 악화된 경우도 있고 불리한 상황일 때 제게 의외의 기회가 온 적도 있고요.

 

김민배=1992년 이후 이창호씨는 10년 넘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바둑인 이창호가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겁니까.

 

이창호=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바둑을 못 둬본 거 같아요. 바둑을 두면서 후회한다든가 자책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꼭 나오거든요. 그런 걸 나름대로 최소화할 수 있는 바둑을 둬 보고 싶어요. 제가 성격이 좀 소극적인데, 이젠 바둑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거 같고요.

 

김민배=현실 속에서이상적인 바둑이란 것이 존재할까요.

 

이창호=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두고 나서 후회하는 부분이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둘 때 모르고 실수해 한참 지나서 알게 된 경우는 어쩔 수 없다지만 두고 나서 바로 깨닫게 되는 실수는 줄여나가야죠.

 

김민배=무엇이 오늘의 이창호를 만들어낸 건가요.

 

이창호=집안사정을 봤을 때 제가 크게 어렵게 자랐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서 그게 뒷받침이 된 것 같아요. 최고 선생님들로부터 배워왔고, 제가 자연스럽게 바둑에 빠져들어 갔었고.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진 듯해요.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이화춘씨부터 아버지 이재룡씨까지 2대째 전북 전주 중앙로에서 ‘이시계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화춘씨는 해방 전부터 만주에서 귀금속을 다루는 상인이었는데 특유의 신용과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이창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를 바탕으로 이창호의 바둑 개인강습을 위해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배=이창호 프로는 지금까지 몇 국이나 두어봤습니까.

 

이창호=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공식적인 시합에서 둔 거는 1500국 정도예요. 그 외 비공식적으로 둔 바둑과 공부할 때 다른 기사와 둔 것까지 합하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계산이 안되거든요. 하루에 10~15국 정도 둔 것 같아요.

 

김민배=1984년 바둑입문 2년 만에 조훈현 9단과 2점 접바둑을 두고 그 해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는 누구의 결정입니까.

 

이창호=할아버님은 제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셨어요. 저도 좋으니까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거고요. 그때까지 아버지께선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창호 뒷바라지 잘 하라고 유언하신 후부터 적극 지원해주셨어요.

 

김민배=당시 최고라는 조훈현씨의 내제자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이창호=처음 3~6개월 정도 이광필 사범이 가르쳐 주시다가 이정옥 사범께 본격적으로 배워 아마추어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 후 전영선 사범으로부터 1년 배우다가 전영선 사범이 저를 조훈현 선생님께 추천해 주셔서 내제자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민배=지금도 조훈현 프로에게선생님이라 부르죠? 조 프로 밑에 들어가 배우면서 어떤 것을 배웠습니까.

 

이창호=선생님께서는 그냥 알아서 자유롭게 공부하게 하는 스타일이셔서 특별히 뭐 혼내시고 그런 건 없었어요. 또 제가 그때 워낙 말이 없어서 바둑을 두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손으로 그려 물으면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죠. “밥 먹었냐고 물으시면 거기에 대답한 거 외에는 말을 거의 안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독기를 둬주셨죠. 특정한 시간대에 오셔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시고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김민배=스승인 조훈현 프로의 바둑의 컬러는 어떤 것입니까.

 

이창호=선생님 바둑은 화려하고 발이 빠르고 경쾌합니다. 그에 비해 제 기풍은 좀 두텁게 두면서 발도 느리죠. 요다 9단 이겼을 때 가장 기뻐

 

김민배=동아일보 조헌주 기자가 쓴 이창호 스토리를 보면, 조 기자는 이창호 프로의 바둑을()의 바둑이라고 평했더군요. 전주의 이시계점의 벽에 숱하게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소리를 들으며 자라와서 초를 다루는 감각, 계산 감각이 발달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창호=저도 그 글을 읽었습니다. 재밌는 해석이었어요. 시계소리는 집에 있으면 뭐 매일 들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김민배=평소 존경하는 기사가 누군가요.

 

이창호=린하이펑 9단이요. 대국을 했을 때 풍기는 느낌이나 기풍이나 그런 게 귀감이 된다고 느껴지거든요.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1992년 제3기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 결승 제5국에서 이창호는 23세 때 최연소 일본 바둑 최고의 타이틀인 메이진(名人)에 올랐던 린하이펑(林海峰) 9단을 백 1집반 승을 거둬 바둑계가 벌컥 뒤집혔었다. 당시 이창호의 나이 16세로 그는 린하이펑을 물리치고 세계 최연소 챔피언으로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결승 당시 50세였던 린하이펑은 자신의 아들보다 한 살 어린 이창호에게 무릎을 꿇고 세계 바둑계의 정상 자리에서 멀어져간다.)

 

김민배=린하이펑 9단의 기풍은 어떤가요.

 

이창호=대체적으로 두터움을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민배=세계 바둑의 원조는 중국이고 일본은 지난 400여년간 세계바둑을 지배해 현대 바둑의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바둑의 중심지는 10년 가까이 한국이 되고 있는데요, 한국 바둑이 강한 이유가 뭔가요.

 

이창호=일본은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중국은 상당히 강합니다. 제가 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지만 여전히 한국이 앞서나가는 이유는 연구생 제도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기원에서 도입한 일종의 바둑사관학교. 정규연구생제도를 통해 입단한 바둑인은 이창호 구단이 처음이다. 한 해 남자 120, 여자 48명이 연구생으로 들어가 매주 토 · 일요일마다 남녀 각각 10개 · 4개 조로 나뉘어 풀 리그를 벌이며 만 18세 미만까지 입단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연구생 총 160여명 중 단 9명만 입단한다.)

 

중국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과 비교해보면 거의 한 점 이상 강하거든요. 요즘은 입단하자마자 1~2년 만에 세계타이틀을 따는 경우가 많잖아요. 입단 전에 이미 기본기가 강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중국도 신예들이 강하지만 이미 여러 번 우승을 해본 우리나라가 심리적으로 유리할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김민배=한 · 중 · 일 3국의 바둑 스타일은 어떻게 다릅니까.

 

이창호=한국중국과 달리 일본 바둑은 형식적인 예의라든지 모양과 규격을 중시해요. 중은실전적이라고 해서, 모양이 안좋더라도 승부에서 좋은 거라면 전투적으로 즐기는 편이거든요.

 

김민배=이창호 프로에 대한 비유가 많습니다. 신산, 안개 덮인 태산, 사람의 모습을 한 바둑의 신 등.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그리고 특히 중국에서 이창호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창호=제게는 과분한 표현들 같고, 그 중에서도안개 덮인 태산은 굉장한 칭찬으로 느껴져요. 아직 너무 과분하고 또 기쁘고 그래요. (이 별명은 이미 고인이 된 중국의 프로 7단이자 유명한 바둑필자였던 조지운이 붙인 것으로, 이창호의 바둑이 거대한 형체는 있는데 누구도 쉽게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며 한 말이다.)

 

김민배=바둑을 둘 때 표정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거든요. 의도적인 건가요.

 

이창호=예전과 비교했을 때 요즘은 표정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어린 생각에 좋다고 표시를 내는 것도 실례될 것 같고 나쁘더라도 그걸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계산해서가 아니라 실제 바둑을 두면 눈앞의 수 생각하기도 어렵거든요. 표정이 아니더라도 서로 바둑을 두어 보면 (상대방을) 느낄 수 있어요. 제가 평소에도 표정이 별로 없고 무뚝뚝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김민배=다 이긴 바둑을 실수로 역전당했을 때 프로기사들은 죽고 싶은 심정이 든다던데, 이창호 프로는 어떻습니까.

 

이창호=솔직한 표현 같아요. 제 경우엔 머리가 백지가 되는 느낌이랄까…. 좀 괴롭지만 그건 내 실수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그걸 내색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차피 자기 자신에게 화나는 거기 때문이죠. (그가 시합 후 냉정을 잃은 건 단 한 번, 초등학교 때 나간 KBS 바둑대잔치. 그는 다 이긴 바둑에서 엉뚱한 수를 둬 결국 지고 말았다. 그러자 어린 이창호는 바둑판 위의 돌을 확 쓸어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대국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전영선 사범에게 혼쭐이 난 후 그는 좀처럼 승패를 두고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김민배=바둑 한 판을 두는 동안에 집을 짓고 부수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되풀이합니까.

 

이창호=열 수 두면 (그림이) 50개 정도 그려지고 어려우면 어려워질수록 머릿속에서 손익계산을 하면서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합니다. 때에 따라 몇 백 가지가 될 수도 있어요.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는 경우도 많죠.

 

김민배=바둑을 두어 이겼을 때 인간적으로 기뻤던 때를 꼽는다면….

 

이창호=여러 번 있습니다. 잉창치배 때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이랑 둬서 이겼을 때가 좋았어요. 그 전까지 요다 9단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는데 그걸 극복해보고 싶었거든요.

(1991년 국내 1인자였던 이창호는 일본의 신예였던 요다 9단과의 특별 5번기에서 1:3으로 졌으며, 요다 9단은 그 이후부터 국내팬들에게이창호 킬러’ ‘한국기사 킬러로 알려지게 된다.)

 

김민배=1990 10 10일 이창호 프로가 처음으로 스승 조훈현을 이겼을 때를 바둑계에서는쌍십절(雙十節)의 반란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때 기분은 어떻던가요.

 

이창호=그때 바둑 내용도 너무 안좋고 힘들었기 때문에 빨리 이기리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더 오래 둘 수 있는 쪽으로 뒀을 뿐이죠. (‘쌍십절의 반란 15세의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을 이긴 날을 가리킨다. 1990 10 10일 제34기 국수전 도전기 제3. 도전 5번기 가운데 이미 이창호가 두 판을 이겨 전적은 2 0인 상황에서 그는 백집 반승으로 스승 조훈현을 꺾고 국수위에 올랐다. 당시 국수전 10연패를 하며 한국 바둑계를 평정하고 있던 조훈현은 서서히이창호의 그늘에 가리게 된다.)

 

김민배=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이창호=예전엔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오락실에 가서 전자오락을 했어요. 지금은 운동할 필요성을 느껴서 테니스도 치고 친구들과 술도 조금씩 해요.

 

김민배=예전에 탤런트 고소영씨를 좋아한다고 했던데, 고소영씨 닮은 여자친구를 구했나요.

 

이창호=(얼굴을 붉히며) 아니요, (들릴락 말락한 작은 소리로) 없어요.

 

김민배=나이가 30인데 집에서 선보라고 안합니까.

 

이창호=…. 아직까지 그런 기회는 없었고, 앞으로 그럴 수 있겠죠.

 

김민배=좋은 상대 나타나면 결혼해야죠.

 

이창호=상황 봐서 해야죠. 모르겠어요.

 

김민배=책을 많이 읽는다던데.

 

이창호=책 좋아해요. 요즘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타나트노트를 읽고 있어요. 저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에요. 역사책고전이나 좋은 명언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김민배=바둑을 안했으면 뭘 하고 있었을 것 같나요.

 

이창호=특별히 모르겠는데요. 일단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면서 책을 좋아하니까 공부를 할 것 같은데요.

 

김민배=용돈은 어느 정도 씁니까. 상금랭킹으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 1위를 하고 있는데, 돈관리는 직접 하나요. (이창호 9단은 2001년 상금으로 101800만원을 받아 바둑계 최초로 상금 10억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3년에는 상금 9400만원으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1986년 데뷔 후 상금 누적액만 최소 70~80억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창호=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 달에 200만원 정도 쓰는 것 같아요. 돈 관리는 제가 안하고 부모님이 하세요.

 

김민배=이창호씨는 인터뷰를 꺼리고 말을 극도로 아끼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창호도 달라지고 있다고들 하던데요, 팬클럽과의 정기모임에 나가 노래도 불렀다면서요. (그는 질문을 날리면 매번 3~5초 생각한 후 어렵사리 말을 꺼냈고, 바둑 한 수 두는 것처럼 단어를 골라 한치의 실수나 경솔함도 허락지 않았다. 목소리는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처럼가늘었지만 답변은 신중하고 노련했다. 만만한 인터뷰 상대가 아니었다.)

 

이창호=이전부터 약속이 된 거라 괴롭긴 했는데 한두 곡을 불렀어요.(그는 이날마법의 성을 열창했다.) 제가 원래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라서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잘 안되는 편이에요.

 

김민배=바뀌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이창호=아주 조금씩이요. 한 번에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김민배=내년 1월부터 진행되는 농심배에서 혼자 4(중국, 일본 기사 각각 2명씩)을 상대해야하는데 부담되지 않나요.

 

이창호=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편하게 둘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길지 질지는 끝나봐야 아는 거지만 일단 불리한 상황이니까 오히려 홀가분해요.

 

김민배=루이나이웨이 9단에게는 자주 졌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창호=워낙 실력이 세신 분이에요. 어려운 대국이었습니다. 지고 나서는 빨리 잊는 편입니다.

 

김민배=우리나라 프로기사 중에서 정말 대단하다 싶은 유망주들이 있다면.

 

이창호=이세돌 · 최철한 · 박영훈씨 등 잘 두는 사람들 많죠. 송태곤 같은 17~18세의 후배 중에도 강한 사람 많아요. 실력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본인의 노력이 보태지면 가능성이 많은 기사들이죠. 실력 자체는 예전에 비해 평준화될 정도로 강해져 있어요.

 

김민배=앞으로 얼마 동안이나바둑의 신()’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 봅니까.

 

이창호=답하기 너무 어려워요. 제가 하고 싶어 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냥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만족해요. 어렸을 때는 바둑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만족해요. 편안하게 하려고요.

/정리=김남인 주간조선 기자(artemis@chosun.com)

/진행=김민배 편집장(ba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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